김대건 아홉 번째 서한 전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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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무 작성일21-08-12 21:01 조회1,90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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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님께서는 제가 떠나기 전에 제가 지나게 될 지방에 관해 정보를 수집하도록 부탁하셨습니다. 저는 주교님의 뜻을 따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즉 저 자신이 관찰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조선의 서당에서 지낸 저의 어릴 적 기억을 더듬기도 하며 정보들을 수집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주교님께 가능한 한 간략하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지방 본래의 만주인은 제가 가지고 있는 서양 지도에서 보다 훨씬 넓지 못한 땅에 분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북위 46도 이북으로는 거의 살지 않고 있는데, 서쪽으로는 몽골과 갈라놓는 장책(長植)과 송화강이 경계를 이루고, 북쪽은 ‘우긴(Ou-kin)’과 ‘유피타츠(Jii-pi-tatse,魚皮轉子)라는 달단인들의 두 작은 나라가, 동쪽은 일본해, 그리고 남쪽은 조선과 접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들이 중국을 정복한 이후로 그들 나라는 황폐해졌습니다. 여행자들이 사람 하나 만날 수 없는 광대한 산림이 그 땅의 일부를 덮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약간의 주둔지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상당한 거리를 두고 함께 모여 사는 소수의 달단인 가족들도 만주인이라고 불러야 한다면 말입니다. 그 가족들은 황제의 비용으로 부양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농사짓는 것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거기에 살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고 또한 산림 속에 널리 퍼져 있는, 그렇지 않아도 몹시 겁많은 북쪽의 토민(土民)들에 “내려오지들 말아라. 이 땅은 점령되었다.”라고 말하기 위해서만 거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드문드문 이 지방 몇 군데에서 몰래 개간하고 있는 중국인들이 생계에 필요한 곡식을 그들에게 팔고 있습니다. 달단인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 그들에게 허락되어 있지 않아서 대부분은 가족이 없습니다.
만주는 땅이 매우 비옥해 보입니다. 그것은 사람 키 높이까지 무성하게 자라는 풀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주교님은 만주를 뒤덮고 있는 황폐의 원인이 무엇인지 물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중국의 지금의 왕조(즉 청나라)를 창시한 자가 만주를 정복할 당시 그 최초의 백성을 정복한 지방으로 옮겨 살게 한 정책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중국 제국을 점령하러 내려왔을 때 그의 모든 군인과 그 가족들, 다시 말해서 그의 신하들을 모두 데리고 왔습니다. 그중 일부는 요동에 남겨 놓았고 나머지는 중국의 주요한 도시들에다 두루 분포시켰습니다. 이렇게 그는 그들을 의무에 얽매이게 하고, 처음부터 반란을 억누름으로써 이 도시들의 소유를 보증하고 또 그의 제권(帝權)을 강화하려 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는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중국인과 만주인은 두 세기 동안 비록 같은 성안에서 살며 같은 말을 하고 있을지라도 두 민족은 동화되지 않고 각기 자기의 혈통을 보존해 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객줏집에 들어가서 모르는 사람을 만나 “니 슈 밍엔(Ming jen, 明人),기엔(khi jen, 旗人)?”,즉 ‘당신은 중국인이오, 만주인이오?”라는 질문보다 더 흔한 질문은 없습니다.
중국 사람은 명나라 왕조의 이름을 따라 불리고, 만주 사람은 기(旗)의 이름을 따라 불립니다. 그것은 원래 만주인들이 8개의 부족으로 나뉘어 있었으므로 부족마다 각기 다른 깃발 아래 모이게 되면서 그 기의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만주인들은 민족 문학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의 말로 쓰인 책들은 모두 북경에 설립된 특별 법정에서 중국 서적들을 번역한 것들입니다. 그들에게는 고유한 문자조차도 없습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글자들은 몽골인들에게서 따온 것입니다. 그들의 말은 조금씩 사라져 가고 있고, 그 말을 하는 사람도 아주 적어서 백 년 후에는 그 말이 책 속에서 과거의 추억으로밖에는 남지 않을 것입니다.
그 말은 우리나라 말과 매우 비슷합니다. 그것은 아마 수 세기 전에 조선이 엄밀한 의미에서의 만주인 나라 저쪽까지 국경을 넓혔을 때 두 나라가 같은 백성이 사는 하나의 왕국을 이루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직 만주에는 조선인의 후손임을 입증하는 혈통을 보존하고 있는 가족들이 있고, 또 조선의 무기와 돈, 그릇과 서적들이 들어있는 무덤들이 있습니다.
위에서 ‘우긴’과 ‘유피타츠(어피달자)’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그들에 대해서는 아주 만족할 만한 정보를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중국인들은 ‘유피타츠’들이 어피(魚皮)로 만든 옷을 입기 때문에 그렇게 부릅니다. 그들은 송화강 강변과 그 지류들 강가에 살고 있거나, 아니면 숲속에서 유랑하는데, 고기잡이와 사냥에 종사하며 잡은 짐승의 가죽과 잡은 물고기를 중국인들에게 팝니다. 거래는 겨울에 이루어집니다. 물고기가 얼어 있어서 2천 리 이상 먼 시장에까지 공급됩니다. 대신에 그들은 옷감, 쌀, 고량주를 받습니다.
그들은 그들 고유의 언어를 가지고 있고, 중국 황제로부터 독립되어 있으며, 그네들 땅에 외국인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중국인들은 그들이 구역질이 날 정도로 불결하다고 말합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그러나 그들을 이렇게 비방하려면 그들 자신이 먼저 속옷을 좀 더 자주 갈아입고 또 그들을 뜯어먹는 기생충을 없애야 할 것입니다.
‘유피타츠’들이 점령하고 있는 지방 너머, 그리고 아시아의 러시아령 국경에 이르기까지 또 다른 유목민들이 살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부족 이 사는 남쪽, 바다 쪽으로 ‘다초수(Ta-tcho-sou)’라고 부르는 나라가 있는데, 얼마 전부터 아주 많은 중국인과 조선인 방랑자들이, 어떤 사람들은 독립 정신에서, 또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범죄 때문에 받아야 할 벌을 피해서, 또는 빚쟁이들의 추격을 피하려고 그리로 모여들었고, 지금도 매일같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도둑질과 범죄에 익숙한 그들에게는 도덕도 원리 원칙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들의 무질서를 억압하고 생활을 할 수 있기 위해 두목을 하나 선택하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만장일치로 살인자는 누구나 생매장하기로 하였고, 또 그 법을 그들의 두목에게까지도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여자가 없으므로 여자를 만나면 어디서나 여자를 납치해 갑니다. 고대 로마의 초기와 좀 비슷한 이 작은 나라가 로마와 같은 발전을 할 수 있을까요? 두고 보아야 할 일입니다.
조선 국경에서 멀지 않은 곳인 산림 속에 태백산(太白山) 또는 큰 흰 산(즉 白頭山)이 구름 높이 솟아 있는데, 이 산은 지금 왕위에 있는 왕가의 시조인 한왕(Han Wang, 汗王)’의 출생지로 중국에서 유명합니다. 산의 서쪽 비탈에 그의 옛집이 보수한 덕분으로 보존되어 있는데, 종교 예식의 중국 미신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곳의 먼지 속에 이마를 조아리기 위해 경건한 순례자가 아주 먼데서부터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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