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 열여덟 번째 서한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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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무 작성일21-08-31 12:55 조회1,39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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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신(작성)일 | 발신(작성)처 | 수취인 | 수취일 | 비고 |
첫 번째 서한 | 1842. 2. 28 | 마닐라 | 르그레즈와 |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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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서한 | 1842.5월경 | 주산 | 리브와 | 미상 | 유실 |
세 번째 서한 | 1842.9월경 | 상해 | 리브와 | 1842. 9.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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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서한 | 1842.12.9 | 요동 백가점 | 르그레즈와 | 1844. 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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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서한 | 1942.12.21 | 요동 백가점 | 리브와 | 1843. 1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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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서한 | 1843. 1.15 | 요동 백가점 | 르그레즈와 | 1844. 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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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서한 | 1843. 2.16 | 요동 백가점 | 리브와 |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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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 서한 | 1844. 5.17 | 몽골소팔가자 | 리브와 | 1844. 9.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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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번째 서한 | 1844.12.15 | 몽골소팔가자 | 페레올 |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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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번째 서한 | 1845. 3.27 | 서울돌우물골 | 리브와 | 1845.1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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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번째 서한 | 1845.4.6 | 서울돌우물골 | 리브와 |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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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번째 서한 | 1845.4.7 | 서울돌우물골 | 리브와 |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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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서한 | 1845. 6.4 | 상해 | 리브와 | 1845.7.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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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번째 서한 | 1845. 6. 4 | 상해 | 페레올 | 1845.7.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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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번째 서한 | 1845.6. | 상해 | 고틀랑 | 미상 | 유실 |
열여섯 번째 서한 | 1845.7.23 | 상해 | 리브와 | 1845.1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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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순교사와 순교자들에 관한 보고서 | 1845.3~4월 작성 7.23발송 | 서울돌우물골 (상해) | 리브와 | 1845.1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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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번째 서한 | 1845.7.23 | 상해 | 페레올 | 1845.1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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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번째 서한 | 1845 .11.20 | 서울 | 리브와 | 1846.4.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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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여덟 번째 서한 작성 배경>
1845.8.17 상해 김가항 성당 김대건 사제 서품
1845.8.24 상해 횡당 성당 김대건 신부 첫미사
1845.8.31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 조선 교우 11명과 함께
라파엘 호를 타고 조선을 향해 출발
1845.9.28 제주도 용수포구 표착
1845.10.12 강경 나바위 도착
1845.11-12월 서울 및 용인의 은이공소 순방
김대건 신부는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를 서울 돌우물골에 마련한 집에 모시고 조선 말을 공부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메스트르 신부와 최양업 부제를 모셔 올 방안을 강구하면서 리브와 신부에게 열여덟 번째 서한을 보냈다.
<참고>
한국 천주교회사에 따르면 서울에 도착한 김대건 신부는 서울과 용인 일대에서 사목활동을 했는데 이의창(베난시오)가 복사로서 김대건을 도왔으며 그의 주선으로 여러 신자들을 만났고 성사를 주었다.
또한 용인 은이공소와 터골 등지를 방문하여 1846년 은이공소에서 부활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고 어머니 고우르술라를 만났다.
<열여덟 번째 서한 전문>
리브와 신부님께 (서울에서),1845년 11월 20일
지극히 공경하올 신부님 !
9월 경에 강남을 출발하였습니다. 큰 바다로 밀려나와 여러 번 폭풍우에 시달렸습니다. 다음 바람이 거세지고 키가 부러지게 되어 난파하지 않도록 돛대들을 베어 버렸습니다.
그러고는 항해를 계속하였는데 강한 역풍으로 제주도까지 밀려갔습니다. 마침내 여러 날이 걸려 강경(江景)이라는 항구에 도착하였고,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아무런 재앙 없이 교우들의 영접을 받았습니다.
지극히 공경하올 페레올 주교님과 공경하올 다블뤼(A. Daveluy, 安敎例) 신부님은 주님 안에서 평안히 계시며 조선말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메스트르 신부님과(최양업)토마스 부제를 영입할 여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박해자들인 왕과 대신들은 아직 살아 있습니다. 박해 소문이 교우들을 괴롭히고는 있습니다만 지금 그들은 평온을 누리고 있습니다. 올해 음력 7월경에 영국 배 한 척이 제주도에 왔습니다. 그때 대신들과 백성들은 이들이 살해된 신부님들의 피를 보복하러 온 줄로 여기고 두려워 하였습니다. 이렇게 서양 배들이 조선에 자주 드나드는 것은 신자들에 대한 외교인들의 증오심을 일으키게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교우들의 안내와 연락으로 서양인들이 온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외교인들은 우리가 강남에 다녀온 것을 의심하고 조사하면서 나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표현이 미숙해서 감히 많이 쓸 수 없습니다. 또 공경하올 페레올 주교님과 공경하올 다블뤼 신부님이 신부님에게 편지를 쓰실 것이고, 또 저는 뜻과 원의로 밖에는 한 일이 거의 아무것도 없으므로 보고 드릴 것이 많지도 않습니다. 이 밖에 탁월하신 저의 리브와 신부님과 공경하올 르그레즈와 신부님에게 진심으로 모든 행복과 성공을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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