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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업 토마스 신부님

페이지 정보

작성자 나무 작성일21-09-25 20:45 조회1,7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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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주교회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는
1821년 3월 1일 충청도 청양 다락골에서 최경환(프란치스코)과 이성례(마리아)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서울, 강원도, 경기도 부평, 안양 수리산으로 박해를 피해 이주를 거듭하면서 신앙을 지켰다.

1836년 2월, 15세 최양업은 모방 신부로부터 한국인 첫 신학생으로 선발되었다. 뒤를 이어 신학생으로 선발된 최방제, 김대건과 함께 라틴어 등을 공부한 후 그해 12월 3일 마카오 유학길에 올랐다.

1837년 6월 6개월 간의 고생 끝에 중국 대륙을 횡단하여 마카오의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에 도착해 신학 공부를 시작했는데 민란이 일어나  1839년 4월에서 11월까지 교수 신부들과 함께 필리핀 마닐라 근교 롤롬보이로 피신하기도 했다.

1842년 7월 최양업은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와 함께 마카오를 떠나
태장하 해안 백가점을 거쳐 11월 소팔가자에 도착했으며 이곳에서 신학 교육을 받고 1844년 12월, 제3대 조선대목구장 페레올 주교에게서 김대건과 함께 부제품을 받았다.

김대건 부제가 조선 입국에 성공한 후 배를 타고 상해로 건너와
페레올 주교에게 사제품을 받고 주교와 함께 조선 재입국에 성공하는 동안
최양업 부제는 소팔가자에 머무르면서 두만강과 압록강을 통한 조선 입국 루트를 개척했다. 


그리고 1847년 초 홍콩 극동대표부로 돌아가 페레올 주교가 프랑스어로 쓴 「기해, 병오박해 순교자들의 행적」을 라틴어로 번역해 파리로 보냈으며  이 문서에 기초하여  1925년 기해년과 병오년 순교자 82위 중 79위가 시복되었다.


최양업 부제는 1849년 4월 15일 상해에서 마레스카 주교에게 사제품을 받았다. 두 번째 한국인 사제였고, 그의 나이 28살이었다.

사제 수품 후 그는  매스트르 신부와 서해 뱃길로 조선 입국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요동 반도 양관과 차쿠에서 베르노 신부를 보좌해 중국 신자들을 사목했다. 즉, 한국인 첫 해외 선교사가 되었던 것이다 . 최양업 신부가 차쿠에서 사목한 기간은 7개월 가량이었으며 1849년 12월 압록강을 넘어 13년 만에 귀국했는데 1850년 1월 서울에 도착한 최양업 신부는 조선에서의 사목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잠시도 쉬지 못하고 교우촌 순방에 들어갔다. 최 신부가 1년 중 순방 해야 할 교우촌은 전체 교우촌의 약 70%에 해당하는 120여 곳으로 해마다 2,800여 ㎞를 걸어야 했다.

교우촌을 다니면서  그는 우리말 교리서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래서  주요 교리와 기도문을 가사체로 노래한 '천주가사'를 편찬했으며
1859년 다블뤼 주교를 도와 한국교회 최초의 공식 교리서인  
한문본 「성교요리문답」과 한문본 기도서인 「천주성교공과」를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을 완성했다.


그러나 최양업신부는 12년 간 해마다 7,000여 리를 걸어 교우촌을 순방하느라 지치고 쇠약해졌다. 결국 1861년 6월 15일,  과로와 장티푸스가 겹쳐 경북 문경 인근에서 쓰러지고 말았으며 
배론에서 급히 달려온 푸르티에 신부에게 병자 성사를 받고  선종했다. 그의 나이 만 40살이었고 조선에 들어와 사목 한 지 11년 6개월 만이다. 


최양업 신부의 유해는 선종지에 가매장됐다가 훗날 배론성지에 안장됐다.

.최양업 신부가 선종한 지 몇 달 후, 베르뇌 주교는 파리 외방전교회 신학교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그를  “굳건한 신심과 영혼의 구원을 위한 불같은 열심, 훌륭한 분별력을 가졌던 귀중한 존재”라고 평가하였다. 


그의 초인적인 사목 활동으로  한국 천주교에서는 최양업 신부를 <땀의 순교자>로 부르면서 공경하고 있으며 한편으로 시복 시성도 추진하고 있는데  2016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가경자로 선포되었다.    


가경자可敬者 : 시복 전 단계에서 잠정적으로 주어지는 경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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