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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택 베드로 대주교의 삶과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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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무 작성일21-12-07 18:41 조회309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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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님의 댓글

나무 작성일

정순택 대주교에게 신앙 유산을 물려준 이들은 부모였다. 영남대 법대 교수를 지낸 아버지(정운장 요셉, 1929∼2000)와 어머니(조정자 데레사, 1937∼2000)씨는 삼남매에게 항상 하느님을 첫 자리에 두는 모습을 보여줬다. 부모가 큰 소리로 싸운 기억이 없을 정도로 부부 사이는 각별했고, 부부간 사랑은 자녀들에게 신앙의 씨앗이 되어줬다. 정 대주교의 부모는 포콜라레 운동의 성소 중 하나인 솔선자로 활동했으며,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 묵주 기도를 바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삼남매는 고3 시절을 보내는 동안에도 주일 미사를 거른 적이 없었다.

정 대주교의 두 살 터울인 누나 정혜경(헬레나)씨는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 꾸중을 듣거나 혼난 적이 없고, 저와 다툰 일이 한 번도 기억나지 않는다”면서 “늘 주변에 친구가 많았고, 축구를 좋아했던 동생”이라고 회고했다. 정씨는 “부모님이 서로 얼굴을 찡그리거나 누구 하나 무거운 분위기를 낸 적이 없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순간에도 부모님은 물질 너머에 귀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셨다”며 “부모님의 삶은 알게 모르게 정 대주교님에게 스며들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털어놨다.

나무님의 댓글

나무 작성일

정순택 대주교는 학창 시절 친구들과 초를 만들어 팔아 보육원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해주고, 장학금을 형편이 어려운 친구에게 양보했다. 조용하고 따뜻한 성품에 축구를 좋아했으며, 어머니가 암 투병을 할 땐 누나, 여동생과 함께 병상에서 기타를 치며 성가를 불러드렸다.

깊은 신앙과 겸손, 화합과 경청을 중요시하는 삶의 태도, 따뜻하고 배려하는 성품…. 27년 7개월 동안 수도자로 살아온 정 대주교에게 ‘온유ㆍ겸손ㆍ친절’을 빼놓고는 그의 인품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가르멜 영성이 몸에 밴 주교로서 한국의 청소년들과 수도자들의 따뜻한 사목자로 동반해왔다.

나무님의 댓글

나무 작성일

정 대주교는 1961년에 태어나 그 해에 대구에서 유아세례를 받았다. 대구 효성초교와 서울 동일중, 우신고를 다니며 거의 전 과목 만점을 받아 ‘수재’로 통했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 정 대주교는 친구들과 ‘한바우’(하나의 바위를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라는 동아리를 만들어 인천 영종도의 보육원에 찾아가 아이들과 종종 놀아줬다. 크리스마스 때에는 보육원 아이들에게 성탄 선물을 해주고 싶어 집에서 파라핀을 녹여 직접 초를 만들어 팔곤 했다. 친구들과 초를 판 돈을 모아, 과자랑 선물을 사서 보육원 아이들에게 안겨줬다.

정 대주교는 1980년 서울대 공대 공업화학과에 입학했다. 아버지의 바람대로 학자의 길을 향했지만 공대 재학 중이었던 3학년 여름방학, 삶의 계획이 송두리째 바뀐 계기를 맞았다. 대구에서 열린 포콜라레의 ‘마리아 폴리(나이와 신분, 직업과 상관없이 모여 사랑을 실천하는 마을)’에서 신앙 체험을 했다. 한 부제가 털어놓은 성소 체험담이 그의 마음을 움직인 것.

‘하느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부르시고 쓰신다’는 것을 깨달은 정 대주교는 대학을 졸업한 후 가톨릭대 신학대 2학년에 편입했다. 

신학교 편입 당시 서울 둔촌동본당 주임 신부로 추천서를 써준 임상무(교구 원로사목자) 신부는 “주일학교 교사로 매일 미사를 봉헌하고, 성당에 일이 있을 때마다 신학생들이랑 빠지지 않고 봉사했다”면서 “한결같이 착하고 성실했던 모습이 기억난다”고 회고했다. 정 대주교는 신학교에서 한 학기를 마친 후 입대할 예정이었지만 허리를 다쳤고, 요양하는 동안 가르멜 영성 서적을 읽게 됐다. 가르멜 영성에 푹 빠진 정 대주교는 1984년 12월 가르멜 수도회에 입회서를 낸 후 보충역으로 입대해 병역 의무를 수행한 후 1986년 5월 수도회로 돌아왔다. 1988년 2월 첫 서원을 한 정 대주교는 1992년 7월 16일 가르멜 수도회 인천수도원에서 사제품을 받고 온전한 수도 사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사제품을 받은 후, 가르멜 수도회 수련장을 시작으로 서울 학생수도원 원장, 광주 학생수도원 원장 등을 지내며 오랜 시간 수도자 양성에 힘썼다. 모든 것을 ‘신앙의 눈’으로 보기 위해 노력했고, 공동체 형제들에게 형제적 사랑을 쏟아 부었으며, 늘 남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심으로 형제 수사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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