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1일...교황 요한 23세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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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무 작성일23-10-11 16:09 조회24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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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에서의 축일은 10월 11일, 성공회 및 루터교회에서는 6월 4일이다.
요한 23세는 1881년 이태리의 가난한 소작농의 13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신심 깊은 어머니의 영향으로 7세에 첫영성체와 견진성사를 받았다.
1895년 ,13세 때 삭발례를 받고 16세에 신학교에 들어갔으며.
19세에 신학생들도 군인 징집을 하자 베르가모 여단의 병사가 되었다.
군 제대 후, 22세에 로마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고 신학교로 되돌아가
교회법 공부를 계속했다. 아울러 그곳 주교의 비서로 일하면서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가졌다 .
1915년 세계 제1차 대전 때 그는 33세의 나이로 재 징집이 되었다가
37세에 공식적으로 제대하였고, 39세에는 몬시뇰이 되었다.
1920년대 초, 무솔리니가 이태리를 통치하자 여러 번 무솔리니를 비판하였고, 당시 가톨릭에서는 놀랍도록 좌파적인 주장을 하곤 하였다.
43세부터 교황청 대사로 외교관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당시 모든 기도문이 라틴어 되어 있었으나 주재국의 언어 기도문을 사용하는 등, 파격적인 일을 했다. 1944년 62세의 나이로 프랑스 대사가 됐을 때, '유네스코는 인종과 언어와 종교를 가리지 않고 온 세상 사람들에게 정의와 자유와 평화를 위해 일한다;라는 뜻 깊은 말을 남겼고 프랑스 대사 시절 제3차 유엔총회에 상정된 대한민국 독립 결의안 의결을 적극 도운 적도 있다.
1958년, 76세 때 비오 12세 교황이 서거하자 후임 교황으로 선출된
요한 23세는 재임하는 동안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최를 비롯하여
20세기 후반 이후의 가톨릭이 개방적, 탈권위적인 성격의 현대화로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제2차 바디칸 공의회는 가톨릭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일이었는데 요한 23세는 안타깝게도 공의회 결과를 보지 못한 채 1963년 6월 3일 세상을 떠났다. 이 후 후임 교황 바오로 6세가 공의회를 재개하였다.
2013년 요한 23세는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 성인으로 공식 인정되었으며
공의회를 개최한 10월 11일을 성인의 축일로 정하였다.
..나무 위키 백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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